좋은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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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영혼의 의사 문인 / 유형준

‘사랑받는 의사(the beloved physician).’ 

  기독교의 가장 뛰어난 사도인 바울은 누가를 이렇게 불렀다. 누가는 지금은 터키의도시인 수리아 안디옥 출신의 유능한 의사로 서기 50년경에 활동하였다. 그는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행했던 선교동역자이며 주치의였다. 
  사역 중에 거센 풍랑을 맞아 거의 익사 상태에 이른 바울을 회복시켰고, 매 맞아 다친 바울을 치료하였다. 바울이 순교하기까지 함께 한 그는 최초의 기독교 의사이며
의사문인이었다.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그의 대표작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초기 기독교 산문문학의 매우 흥미로운 예다.

“데오빌로 각하에게,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입니다.”

  이러한 서문 형식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폴리비오스 등과 같은 당시 헬라 고전 문학의 대문장가들이 즐겨 쓰던 서문 양식과 비슷하다. 이처럼 당시 전통적인 헬라문학의 집필 양식에 정통한 누가는 기독교 운동의 시작과 바울의 생애에 얽힌 이야기를 역사라는 무대에 펼쳐 흠없이 멋지게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의 헨드릭스 총장은 그의 작품을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헬라 문체로 구성된 연대기적 문학’이라고 정의하였다. 멋진 구성과 함께 의료와관련된 대목은 어느 복음서 기자들보다 전문적으로 세미하게 썼다. 예를 들면 전신부종을 가리키는 ‘고창병(hydropikos)’이란 용어는 당시 그리스 일반 문학작품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의학전문용어다. 
  한 예를 더 든다면, 예수가 잡히던 순간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베어떨어뜨리자 ‘예수께서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고 의료적 과정을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최고의 정확성을 지닌 역사문학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세계적인 신약성경 고고학자인 윌리엄 람제이는 『신약의 신뢰성에 대한 최신 발견』에서 ‘누가의 역사문학은 신뢰성의 측면에서 탁월하다. --- 그는 위대한 역사문학가’라고 평하였다. 
  정확한 묘사에 더하여, 문장을 전개하는 솜씨가 남달랐다. 한 예로 히브리에서 일어난 일을 서술할 때는 히브리어 문장구조를, 그리스에서의 이야기는 그리스 어문 구조를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이러한 문학적 능력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도시에서 가장  교양 있고 국제적인 의사 교육을 받으면서 함양된 품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예수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그의  뛰어난 미술적 재능은 독자로 하여금 쉬이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게 하는 문학적 역량의 바탕이 되었다. 그의 문학적 능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 특히 프랑스 언어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가는 확실히 언어의 화가다. 그의 글은 문학적 다재다능이 돋보이고 매우 아름답다.”

 ‘누가(Luke)’는 헬라어로 ‘로우카스(Loucas)’, '빛을 주다'라는 뜻이다. 여든넷에 숨을 거두기까지 글로써 남긴 거룩한 영혼의 문학은 그가 의사문인이었기에 문학적 정확성을 신뢰받으며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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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 유형준

“그래서 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니?”

로버트 포스터(Robert Foster)의
『The Navigator』에 나오는 질문이다. 
더없이 높은 사명 성취를 방해하는 
요인은 자신감을 왜소화 시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며 그 불신의 
근본 원인은 ‘경건하지 않은 삶’이라고 
포스터는 지적한다. 

그동안 준비하고 기도했다고 믿었던 
벌써 10년 넘어 반복되어 오는 
의료선교 현장의 새벽은 포스터가 
던진 질문으로 여느 때보다 동녘의 
어스름이 길었다. 
“절절한 믿음의 교만을 위한 허세인가?”
아무런 최신 장비 없이 진찰하고 진단하여 
처방을 내는 의사의 대단한 능력. 
주님도 인정하셨을 달란트.
“그래서 너는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가?” .....

1. 의사 맘대로
‘변변한 한글 교과서가 없어 영문서적을 
교재로 쓰던 대학 학창 시절이었다. 
책을 읽다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의사 마음’
[physician’s mind]이라는 단어에 
몰입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관절염 관련
국제 잡지에 실린 논문의 
「Pooled indices to measure rheumatoid 
arthritis activity: a good reflection of the 
physician's mind?」(류마치스 관절염 측정 
풀 지표: 의사 마음을 잘 반영하나?)와 같은 
문장 속의 단어다. 진단과 치료 및 예방의 
명확한 방침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잘 판단해서 재량껏 하라는 뜻이라고 
여기면서도 연이어 적힌 두 단어는 눈길과 
생각을 한참씩 끈끈하게 붙들었다. 

‘의사 마음’의 의사는 누구인가? 
의사는 환자, 보호자와 함께 의료의 한 가운데 
자리한다. 거기에서 그들은 모두 질병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질병은 그 역사를 인간과 함께 하며 
우리에게 생명의 취약성과 생의 유한성을 
절절하고 명징하게 일깨워 준다. 
소통이 강조되는 요즘엔 원시시대의 주술적 존재, 
근현대의 권위주의적 의료의 일방적 공급자가 
아닌, 전문화된 능력과 동시에 종합화의 재능도 
함께 지녀 인간을 이해할 줄 아는 소통 기능적 
존재로도 규정되어지고 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지니는 마음이 
‘의사마음’이고 그 마음이 작동하는 것이
‘의사 맘대로’다. 
그렇다면 ‘맘대로’는 무슨 뜻인가? 
사전적 의미는 ‘하고 싶은대로’다. 
의사가 지니는 마음이 의사의 마음이고 
‘의사 맘대로’는 의사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들떠 있었다.
의사의 순종도 그럴 거라고 마음대로 우겼다. 
순종은 깨우치거나 결정되는 것이아님을 
안다고. 순종 역시 오로지 주님의 계획과 
예비에 의한 것임을 깨우쳤다고자신하면서. 
순종은 독한 인내에 기초하여 순종을 순종답게 
하는 훈련, 연단, 양육에 더하여 인내가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순종, 종으로서의 순종이 
이루어진다는독한 뜻을 안다면서도. 그리고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는 겸손은 순종의 
필수 요소임도 알았다고. 세상을 좇는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보호아래' 분별하는 그런 겸손 
그런 순종의 가치를 익혔다고 마음대로 
으쓱대면서. 

2. 마른 뼈의 새벽
험한 피부 같은 시간이었다. 진정한 속살은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믿음만이 또는 
자신을 위한 믿음만이 진지한 가치라고 
교만하게 자랑하며 왔다. 
자기 자신의 불완전하고 알량한 지식이나 
경험으로 진실을 대할 때에 불끈 치솟는 
자존심을 담대함이라고 맹신하던 시간이었다. 
맹목적 순종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또한 모든 것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동행하심과 한 치의 
간극도 없이 일치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롭게 안팎으로 드러날 때에만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 변화는 
주님의 형상 닮기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고 알면서도. 용기 없고 비겁하고 
줏대 없고 게다가 품성이 천한 비굴과 
겸손은 전연 다르다고 지껄이면서도.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 자기를 비운
그릇’이 되는 겸손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면서. 

밤새 쌓인 티끌보다 먼저 일어나
세상에 젖는 기쁨에 들떴던 관절들을 달래어
온종일 새벽을 품고 다니기엔 너무 무거워
꼭 필요한 뼈만 골라 맞추어 나선다

저기
밤새 떠돌던 교차로가
수많은 엇갈림에 못 박힌 채 
십자가로 걸려 있다

못 박힌 자리마다 썩히는 것이 들어 있어 
고열에 온몸 떨며 
물기 한 방울까지 토해낸
하나의 고형물일 뿐이어도

무화과 잎사귀 마르듯 
서러움 사무칠 골수마저 말라 
굶주린 새의 한 끼 먹이가 되어
가장 가벼운 뼈로 공중을 날아다니다
마을 어귀 돌팔매에
미문 앞 앉은뱅이의 환도뼈로 주저앉을 수 있다면

혹시 바람에 쓸리어
구름 멈춘 골짜기, 
가난이 등불 태우는 노인의 저녁을 데우는
장작으로 태워져 
미명의 제단에 향으로 올려 질 수 있다면

세상에서 잊힘이 서럽지 않아

이슬 한 방울에 샘물 하나를 통째로 부어 
자리끼를 포도주로 빚으시는 호각소리에 
밤새 내린 고요보다 먼저 일어나
목축이며 티끌처럼 걸어오는 새벽

-「마른 뼈의 새벽」(全文)/유담

마른 뼈 다 태워 사르고 난 한 줌 티끌로라도
 “그래서 너는 의료선교를 하니?”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아론 수오 스다이.”
미명의 끝에서 통역을 맡은 킴 장로의 명랑한 
아침 인사를 맞으며 
용기를 내어 꼭 필요한 뼈만 챙겨 
선교장소로 나선다. 

<힐링투게더 誌, 선교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