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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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 유형준

“그래서 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니?”

로버트 포스터(Robert Foster)의
『The Navigator』에 나오는 질문이다. 
더없이 높은 사명 성취를 방해하는 
요인은 자신감을 왜소화 시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며 그 불신의 
근본 원인은 ‘경건하지 않은 삶’이라고 
포스터는 지적한다. 

그동안 준비하고 기도했다고 믿었던 
벌써 10년 넘어 반복되어 오는 
의료선교 현장의 새벽은 포스터가 
던진 질문으로 여느 때보다 동녘의 
어스름이 길었다. 
“절절한 믿음의 교만을 위한 허세인가?”
아무런 최신 장비 없이 진찰하고 진단하여 
처방을 내는 의사의 대단한 능력. 
주님도 인정하셨을 달란트.
“그래서 너는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가?” .....

1. 의사 맘대로
‘변변한 한글 교과서가 없어 영문서적을 
교재로 쓰던 대학 학창 시절이었다. 
책을 읽다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의사 마음’
[physician’s mind]이라는 단어에 
몰입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관절염 관련
국제 잡지에 실린 논문의 
「Pooled indices to measure rheumatoid 
arthritis activity: a good reflection of the 
physician's mind?」(류마치스 관절염 측정 
풀 지표: 의사 마음을 잘 반영하나?)와 같은 
문장 속의 단어다. 진단과 치료 및 예방의 
명확한 방침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잘 판단해서 재량껏 하라는 뜻이라고 
여기면서도 연이어 적힌 두 단어는 눈길과 
생각을 한참씩 끈끈하게 붙들었다. 

‘의사 마음’의 의사는 누구인가? 
의사는 환자, 보호자와 함께 의료의 한 가운데 
자리한다. 거기에서 그들은 모두 질병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질병은 그 역사를 인간과 함께 하며 
우리에게 생명의 취약성과 생의 유한성을 
절절하고 명징하게 일깨워 준다. 
소통이 강조되는 요즘엔 원시시대의 주술적 존재, 
근현대의 권위주의적 의료의 일방적 공급자가 
아닌, 전문화된 능력과 동시에 종합화의 재능도 
함께 지녀 인간을 이해할 줄 아는 소통 기능적 
존재로도 규정되어지고 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지니는 마음이 
‘의사마음’이고 그 마음이 작동하는 것이
‘의사 맘대로’다. 
그렇다면 ‘맘대로’는 무슨 뜻인가? 
사전적 의미는 ‘하고 싶은대로’다. 
의사가 지니는 마음이 의사의 마음이고 
‘의사 맘대로’는 의사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들떠 있었다.
의사의 순종도 그럴 거라고 마음대로 우겼다. 
순종은 깨우치거나 결정되는 것이아님을 
안다고. 순종 역시 오로지 주님의 계획과 
예비에 의한 것임을 깨우쳤다고자신하면서. 
순종은 독한 인내에 기초하여 순종을 순종답게 
하는 훈련, 연단, 양육에 더하여 인내가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순종, 종으로서의 순종이 
이루어진다는독한 뜻을 안다면서도. 그리고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는 겸손은 순종의 
필수 요소임도 알았다고. 세상을 좇는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보호아래' 분별하는 그런 겸손 
그런 순종의 가치를 익혔다고 마음대로 
으쓱대면서. 

2. 마른 뼈의 새벽
험한 피부 같은 시간이었다. 진정한 속살은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믿음만이 또는 
자신을 위한 믿음만이 진지한 가치라고 
교만하게 자랑하며 왔다. 
자기 자신의 불완전하고 알량한 지식이나 
경험으로 진실을 대할 때에 불끈 치솟는 
자존심을 담대함이라고 맹신하던 시간이었다. 
맹목적 순종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또한 모든 것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동행하심과 한 치의 
간극도 없이 일치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롭게 안팎으로 드러날 때에만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 변화는 
주님의 형상 닮기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고 알면서도. 용기 없고 비겁하고 
줏대 없고 게다가 품성이 천한 비굴과 
겸손은 전연 다르다고 지껄이면서도.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 자기를 비운
그릇’이 되는 겸손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면서. 

밤새 쌓인 티끌보다 먼저 일어나
세상에 젖는 기쁨에 들떴던 관절들을 달래어
온종일 새벽을 품고 다니기엔 너무 무거워
꼭 필요한 뼈만 골라 맞추어 나선다

저기
밤새 떠돌던 교차로가
수많은 엇갈림에 못 박힌 채 
십자가로 걸려 있다

못 박힌 자리마다 썩히는 것이 들어 있어 
고열에 온몸 떨며 
물기 한 방울까지 토해낸
하나의 고형물일 뿐이어도

무화과 잎사귀 마르듯 
서러움 사무칠 골수마저 말라 
굶주린 새의 한 끼 먹이가 되어
가장 가벼운 뼈로 공중을 날아다니다
마을 어귀 돌팔매에
미문 앞 앉은뱅이의 환도뼈로 주저앉을 수 있다면

혹시 바람에 쓸리어
구름 멈춘 골짜기, 
가난이 등불 태우는 노인의 저녁을 데우는
장작으로 태워져 
미명의 제단에 향으로 올려 질 수 있다면

세상에서 잊힘이 서럽지 않아

이슬 한 방울에 샘물 하나를 통째로 부어 
자리끼를 포도주로 빚으시는 호각소리에 
밤새 내린 고요보다 먼저 일어나
목축이며 티끌처럼 걸어오는 새벽

-「마른 뼈의 새벽」(全文)/유담

마른 뼈 다 태워 사르고 난 한 줌 티끌로라도
 “그래서 너는 의료선교를 하니?”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아론 수오 스다이.”
미명의 끝에서 통역을 맡은 킴 장로의 명랑한 
아침 인사를 맞으며 
용기를 내어 꼭 필요한 뼈만 챙겨 
선교장소로 나선다. 

<힐링투게더 誌, 선교에세이>